“우리 빨리 내려야 해. 제발, 위급하다니까?”

그녀는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자기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건 그녀의 일부에 불과했고 전혀 신나는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떠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자기를 마주하고 놀랄 수 있다는 사실을 즐겼담. 그녀는 꽤 어린 나이에 진정한 자기를 찾는 일에 관심을 잃었고 자기의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진정성이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이나 수 세기 전이나 세상에 이토록 많은 인간이 진정한 자신을 찾는 일에 몰두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물론, 사람들은 원래 이상한 행동을 하고 그걸 좋아하지만, 이 경우에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그토록 많은 사람이 자신을 발견하고 나면 삶이 얼마나 지루할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니, 온갖 여행, 워크숍, 영적 스승. 신비로운 산으로 떠나는 여행이나, 향이 나는 촛불이나, 오직 모순어법으로만 말하는 엄청나게 늙은 노인. 다 좋았다. 그런 모험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진정한 자신은 정적이고, 안정적이고, 구식이고, 이 세계 혹은 이 우주와 동일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자신은 움직일 수도 없고 변화할 수도 없는 본질이니까. 변주될 수 없는 단일한 하나일 테고. 진정한 자신은 행복도, 비극도, 애도도, 슬픔도, 죄악도, 부끄러움도, 형편없는 농담도, 쾌락도, 죄책감이 드는 쾌락도, 자기연민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작은 후회 정도는 느낄 수 있으려나. 세속적인 세계를 넘어 고양된 상태에 이르는 것, 내적 고요, 내면이 텅 빈 상태가 되는 것이 뭐가 좋을까. 그녀는 내적 동요나 걱정, 사랑에 빠지는 경험이 없는 삶은 정말 보잘것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정체성은 유동적이라고 확신하면서도, 동시에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는 각종 실천에 완전히 몰두하는 것이 거의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유동성과 진정성은 양립할 수 없다. ‘절반만 열린’ 같달까?

이게 선택할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실은 단계별로 젠더를 승인해주는 일이고,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계급과도 관련이 있다. 진정한 자신에 몰두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특권층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대체로 일하러 가기 바쁘다. 수십 년을 바쳐야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딘가 역설적이다. 만약에 진정한 자기 자신이 20분 만에 나타나면 어떡하지? 그래도 남은 29년 몇 개월을 산에서 자기성찰 하면서 한쪽 손뼉을 치며 버텨야 하나?

“갑자기 뭐가 그렇게 위급해?” 그녀는 무심결에 이렇게 말하고는 자기가 동료 여행자와 같은 단어를 썼다는 사실에 놀랐다. 보통 때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다. 위급하다는 말은 유예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위급하다’는 말은 ‘꾸무적대다’의 반대말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을 미루다’의 반대말에 반대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끝나지 않는 서스펜스랄까. 뭔가 더 급한 것이 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

“우리 여기서 내려야 해. 지금. 빨리 와, 빨리, 서둘러!”

그들은 짐을 뒤죽박죽 들고는 통로를 지나쳐 문이 닫히기 직전에 간신히 내렸다. 놀랍게도 그들은 도시 이름이 유래한 강을 가로지르는 한 다리의 중간에 있었다. 이 다리는 거친 나무로 되어 있었고 철제 계단이 여러 층의 인도로 연결된 대단히 복잡한 건축 구조물이었다. 말들이 다리에서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고 끝없이 이어지는 말발굽 소리가 다리의 목재와 빈 곳들을 울리면서 귀청이 터질듯한 소리를 냈다. 무거운 회색 모직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큰 천으로 감싼 과일, 야채, 가죽, 털실 보따리 등을 들고 다리의 어스름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밝은 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소작농 여자들은 머리에 소시지, 마른고기, 절인 생선, 견과류와 허브 등을 쏟아지기 직전까지 채운 바구니를 이고 시장에 이것들을 팔러 가고 있었다. 사람들 다리 사이로 돼지들이 꽥꽥대며 뛰어다녔고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그 뒤를 따랐다. 걷거나 말에 탄 남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성거리거나 끝없는 동쪽의 숲길로 떠났던 여정에서 돌아와 도시 으슥한 곳에서 싸움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예능인들이 다리가 도시와 만나는 지점에서 마술 묘기를 부리는 동안 시뻘건 얼굴을 한 실력 없는 음악가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백파이프 연주를 들으라고 강요했다. 그 사이로 잡상인들이 지나다니며 끝도 없는 사기와 볼거리, 다단계 판매와 야바위 놀이를 들이댔다. 그 옆에서는 그들의 어린 후배들이 넝마를 입고 소매치기를 했고 사람들의 귀중품은 허공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귀부인들은 마차의 나무 좌석에 앉아 지나쳐갔다. 그 옆에서는 상처 입은 환자들이 병원에서 나오고, 정신이 온전치 못 한 사람들은 무릎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고 숙취를 떨쳐버리려는 술주정뱅이들 옆에 앉아 혼잣말했다. 담배를 피우면서 허풍 떠는 젊은 남자 무리가 있었고, 다리 건너편에는 고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서 있었다. 성벽 바깥의 산맥에서 불어오는 춥고 습한 바람이 모든 것을 쓸어내리듯, 이 모든 사람이 다리의 좁은 문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한 해의 이맘때쯤이 되면 깊은 숲에서 내려와 도시에서 쉴 곳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야생의 풍경이 두려운 사람들과, 반대로 도시의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미로 사이로 몸을 숨겨야 하는 이들이었다. 다른 사람이 관심을 보일법한 귀중한 것, 지켜야 할 것들을 가진 이들은 도시에서 피신처를 찾았다. 방해받지 않기 위해 난리 통에 숨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 생존이 걸려 있었고, 연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았다. 여기서 유효한 것은 할퀴고 물어뜯는 것, 사기 치고 비열한 계략을 짜면서 자기 길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공유하는 지평과 이해가 있었다. 미래가 얼마나 불확실하건, 노력은 공동의 산물이었고 많은 말을 쏟아내지 않고도 서로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대부분은 냄새나는 성기를 가리키는 말로 잔뜩 버무려진 욕설이었다.

이 혼란 속에서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나무다리를 건너면서 일종의 만족감과 가벼운 기분이 그녀를 휩쌌다.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이 세계와 그녀가 조화를 이루는 기분은 그녀가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걸 찾아야 해. 찾지 못하면 이 모든 게 다 허사로 돌아갈 거야.” 동료 여행자가 옆에서 불쑥 나타나 소리 질렀다. 그들이 뭘 찾는 건지, 뭐를 잃어버린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과정에 그녀도 연루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어쩌다가 그 옆에 있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그들이 거의 다리 끝에 다 와 갈때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둘을 다리 끝으로 밀어붙였고, 그들은 어쩔 도리 없이 강둑으로 연결되는 철제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물은 침전물 때문에 갈색빛이었고, 사람들의 분뇨와 썩어가는 것들이 뒤엉켜 섬을 만들었다. 새들은 그 위에서 질투와 상상을 합친 것보다도 더 독성이 강한 거대한 벌레들과 어울렸다.

계단을 충분히 내려가자 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주머니와 가방을 챙길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생겼다. 둘은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는 밖에서 훤히 보이는 움푹 들어간 공간에서 아이들이 이미 수년 전에 안감이 찢겨져나간 낡은 코트를 덮고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고개는 돌아가 있었고 영양이 부족한 그들의 몸은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마르고 더러운 피부에서 스며 나오는 공포는 코트를 뚫고 나와 엷은 안개가 되어 영혼에 어둠과 절망을 불어넣었다. 그녀가 직전에 느꼈던 조화로움은 순식간에 사라져 어느새 뼈에 시린 바람이 불었다. 갈색 모직 드레스 아래에 입은 페티코트의 허리띠가 갑자기 피부에 축축하게 닿았고 그녀는 척추를 따라 차가운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왼손을 들어 가슴 가장 윗부분을 짚었다. 손을 아래로 쓸어내리자 가슴뼈를 따라 옅게 땀이 나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 불쾌함을 떨쳐버리기 위해 손을 몇 번 부드럽게 쓸어내렸고 놀랍게도 여러 겹의 천 아래에 젖꼭지가 딱딱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황한 그녀는 그런 신체적 반응이 악마의 작용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당혹스럽게도 차가운 땀의 불쾌함은 가슴 부근의 온기와 함께 찾아왔다. 그 온기는 마치 음모를 타고 흘러내려 음순을 감싸듯이 배꼽 아래에서 증폭되었다. 그런 자신이 역겨워 이 감각을 내쫓으려고 했지만, 그녀가 더 거센 분노로 몸의 반응을 막으려고 하면 할수록, 쾌락의 감각은 더 커졌다. 그 감각은 상체의 가운데에서 습한 냉기와 뒤섞여 몹시 불편한 긴장 상태를 불러왔다.

그녀는 절박하게 동료 여행자의 팔을 찾았다. 찾자마자 한 손으로는 그의 팔에 매달리고 다른 손으로는 눈을 가리며 몸을 앞으로 숙여 거칠게 코로 숨을 쉬었다. 자기가 계단 위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을 알았고 어린아이의 얼굴을 한 뚱뚱한 여자 하나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성적으로는 끔찍하게 느껴지는 욕망의 형태가 그녀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려웠다. 대체 어떤 자극 때문에 이 뚜렷한 성적 감각이 몸에서 피어난 것일까? 죄악일 뿐만 아니라 이단에 가까운 욕망이 자기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을 인식한 이후에도 자신을 견디며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물리적인 현현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러나 그 경험을 부정할 수는 없는 욕망. 그녀는 자신의 성적 흥분에 이렇게까지 노출된 적이 없었다. 그녀의 몸은 뭔가를 원했고, 이 사실은 그녀에게 분명했지만,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